로그인
제 목 사회봉사관 건축에 따른 회고
· 작성자정보 김이봉   - Homepage : http://leebong.net
· 글정보 Hit : 1260 , Vote : 239 , Date : 2008/12/10 08:37:02
 

2002년 12월06일 기공식을 하고,
2004년 03월14일 준공식을 가졌다.
1년3개월이란 세월동안 내게는 큰 보람과 함께 인내의 날들이었다.
건축헌금을 한것도 아니었고, 동북아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해외로부터 송금된 자원을 주축으로 건축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런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내의 고통이 따랐는지 모른다.
건축위원회를 조직하고 기술자문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도리어 문제였다.
우선 당회원간에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한 것이 큰 이유였다.
차라리 이번 주차장 건축에서 처럼 건축위원장 중심으로 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설계에서 부터, 건축진행과정에서 불신과 부정적 시각으로 대했다.
심지어 자재사용에서 하나하나 이견(異見)을 말했고, 건축을 하다보면 자연히 변경과
추가 비용이 들게 마련인데, 그럴 때 마다 고통스러운 고비고비들을 넘겨야 했다.

나의 목회생활 중, 사회봉사관 건축기간처럼 어려웠던 때도 없었다.
이번 주차장 건축에서 처럼 담임목사는 아예 관여하지 않았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거의 매일 하루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었다.
감독으로 수고한 장로님의 노고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수고의 댓가는 오해와 의구심으로 돌아왔다.
지금껏 아쉽고 미안한것은 설계와 감리를 맡았던분에게 감사패도 전하지 못한 일이다.
설계는 신문에 공모하여 건축위원회에서 당선되었고, 모 교회의 진실한 안수집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내게 대한 遠因인들이 쌓였던 것이 그렇게 표출된 줄 안다.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들이 쌓이게 되는것이 사실이다.
목사의 목전에서는 표출할 수 없었던것이 그런 것들로 나타났다고 본다.
하지만,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 되어서 잘 마무리를 지었다.
별별 인간적인 가슴아픈 이야기들이 오고갔지만, 사회봉사관은 완공되었다.
그런데, 지금와 생각해 보면 지역사회를 위해 열린공간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교회자체만을 위해 사용되는 시설이 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기공식때 지역사회를 위해 열린 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한것이었기 때문이다.

2008. 12. 09 밤/ 청운

220.88.196.243

‘목사의 오만/장로의 아집’에 관한 글을 보고 [1]
연탄 이야기속에 담긴 메시지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Pros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