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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화천 기도원 기념식수 앞에서
· 작성자정보 김이봉   - Homepage : http://leebong.net
· 글정보 Hit : 1591 , Vote : 241 , Date : 2008/08/12 07:25:43
 
· File1 : 430x사진_042_20080810.jpg (218.4 KB), Download : 1


사진: 처음 엄지손가락 굴기의 묘목이었다.

화천 기도원의 시작과 기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떻게 서울에서 그 먼 거리에 있는 곳에 기도원을 세웠을까.
상도교회 교육전도사였던 이윤식(현 목사)의 매형되는 분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신학을 졸업후 그런곳에서 기도원을 만들려고 지내던 중 소개하였다.
처음 임야와 전등 약 1,200평(잘 기억안남)정도였던것으로 안다.
그것을 8,000만원에 구입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골짜기에 화전민이 무를 심어 먹던 밭이었다.
화천까지만 포장이 되었었고, 화천에서 기도원까지는 비포장이었다.
다리도 없어 지금처럼 그렇게 쉽게 갈 수 없었다.
현 대로변 입구에서 하차하여 걸어서 약 20분 올라가야 했었다.
밤에는 손전등을 켜들고, 징검다리를 건너 가야 했고, 그러면서도 그 길이 묵상의 길이었다.
찬송을 부르며 올라가던 그 길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영감이 컸다.
기도원 골짜기는 한국전쟁시 인민군이 진쳤던 곳이고,
화천 땜을 사수하라는 이승만대통령의 명령으로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묻혀진 곳이 화천 우리 기도원의 골짜기이다.

그런곳에 기도원을 세우게 된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본다.
기도원치고는 최고의 자리라고 본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이웃과의 마찰도 없이 아무리 외처도 좋다.
앞으로 서울에서 춘천까지 고속도로가 생기고, 철도가 개통되면
더욱 더 거리가 짧아져 두고 두고 좋다는 평을 들을 것이다.
앞으로 그 곳을 영성수련장으로 잘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2008. 08. 12. 아침/ 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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